내가 쓴 시

귀거래사

공산(功山) 2020. 7. 22. 10:34

   귀거래사歸去來辭*

   김상동

 

 

   5,300만 년 전 저 대왕고래

   히말라야 남쪽 풀밭을 뛰어다니던 털북숭이였다지

   다시 뭍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가슴지느러미 속에 남아 있는 손가락뼈

   흔적으로만 남은 뒷다리

   여전히 튼튼한 허파만을 믿고

   오랜 버릇대로 위아래로 등뼈를 흔들어대며

 

   이름마저 희미한 옛 친구들은

   어떻게 변한 모습일까?

   아직 그곳에 살고 있기나 하는지?

 

   무리지어 오르내리며

   나물 뜯고 열매 따던 따사로운 산비탈

   밤마다 올라앉아 별을 쳐다보던 너럭바위

   지금도 그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석별의 정표로 바다 속 친구들이 준

   한 다스의 CD와 두툼한 책 한 권

   그 너럭바위 위에 앉아 천천히 읽어 보리라

 

   발굽과 털이 다시 돋을 날은 멀기만 한데

   34년이란 세월이 3,400만 년 같은데……

 

 

   *귀거래사歸去來辭 : 중국 진나라 도연명의 시 제목을 빌려 옴.

 

   ―『대구문학』141호(2019.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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