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노신 - 김광균

공산(空山) 2020. 7. 10. 12:06

   노신(魯迅)

   김광균(19141993)

 


   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
   먼 기적 소리 처마를 스쳐가고
   잠들은 아내와 어린 것의 베개맡에
   밤눈이 내려 쌓이나 보다.
   무수한 손에 뺨을 얻어맞으며
   항시 곤두박질해온 생활의 노래
   지나는 돌팔매에도 이제는 피곤하다.
   먹고 산다는 것.
   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

   등불을 켜고 일어나 앉는다.

   담배를 피워 문다.

   쓸쓸한 것이 오장을 씻어 내린다.

   노신(魯迅)이여
   이런 밤이면 그대가 생각난다.
   온 세계가 눈물에 젖어 있는 밤
   상해 호마로 어느 뒷골목에서
   쓸쓸히 앉아 지키던 등불
   등불이 나에게 속삭어린다.
   여기 하나의 상심한 사람이 있다.
   여기 하나의 굳세게 살아온 인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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