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주민현의「브루클린, 맨해튼, 천국으로 가는 다리」평설 - 조대한

공산(空山) 2020. 5. 26. 07:39

   브루클린, 맨해튼, 천국으로 가는 다리

   주민현

 

 

   나의 파이프는 금빛이 나는 칠로 단장되어 있어*

   네 가슴팍엔 모형 개구리가 잠들어 있지

 

   파이프를 타고 연기가 오르내릴 때

   네가 구두를 신고 내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그때의 찬 바람 냄새

 

   우리에게 아직 이름이 없었을 때

   세상을 잠깐 내려다보았다는 건

   우리가 꾸며내기 좋아하는 인생의 첫 장면

 

   나는 브룩클린다리 아래서,

   너는 맨해튼다리 아래서

 

   버려진 소파에 앉아본다

   푹신한 천사의 코가 스쳐 간 것 같아

 

   인간의 안에는 언제나 신기한 면이 있어

   놀라울 만큼의 선의

   우연한 악의의 감정

   우리는 일찍이 학습했네

 

   테러를 추모하는 공원에도 조롱꾼은 있고

   손에 쥔 만화경을 돌리며

   천국은 작고 어둡다

   그런 말을 떠올렸네

 

   약혼자와 헤어지고서

   누군가 네 가슴을 포크로 찍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너는 거대한 케이크 같고

 

   나는 촛불을 후 불어 끄듯이 생각했네

   오늘 나의 하루가 아름다웠다면 누군가의 해변으로 검은 모래가 밀려온다는 것

 

   밤은 검고, 검고, 검어서

   브룩클린, 맨해튼, 빛나는 다리 위로

 

   25층에서 오랜 욕설 전화에 시달린 사람이 기절하거나

   승강기를 고치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해

 

   영화를 보다 보면 때때로 정말 중요한 장면은

   페이드아웃과 페이드인 사이에 있어

   요약된 문장 사이로

   요약된 사람들 사이로 눈이 내리네

 

   뉴욕, 시티, 빈손을 쥔 사람들이 모이고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짐을 싸고 떠난 거리

 

   공휴일의 월스트리트는 천천히 재로 물들지

 

   꿈의 무대를 만들던 사람이 떠난 거리로

   새로운 메가폰을 잡은 사람이 들어서고 있어

 

   화려한 뉴욕의 밤거리를 걷다가

   검고 반짝이는 구두를 샀네

   미숙한 기관사는 정차와 달리기를 반복하고

   탭댄스를 추듯 슬픔을 모르는 사람의 발을 살짝 밟기 위해서

   *장 폴 사르트르, 구토

​    -- 월간 現代文學202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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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렌디피티>라는 영화가 있다. 뉴욕의 크리스마스이브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사라조나단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잠시 동안의 만남이지만 둘은 서로에게 깊이 끌린다. 이미 사귀던 사람이 있었던 사라와 조나단은 각자의 연락처를 5달러짜리 지폐와 헌 책에 적고, 그것들이 돌고 돌아 운명처럼 서로에게 닿게 되면 그때 연락을 주고받자 약속한 후 아쉽게 헤어진다. 7년이 지난 뒤 여전히 맨해튼에서의 짧은 만남을 잊지 못하는 사라와 조나단 앞에 서로의 징표들이 운명처럼 다시 나타난다. 그들은 미래를 약속했던 약혼자와의 관계를 포기하며 서로를 찾기 위해 애쓰고, 수많은 엇갈림 끝에 결국 다시 만나게 된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등장인물들이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나눈 카페의 이름이지만, 과학 분야 등에서 뜻밖의 발견 또는 의도치 않은 성과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 단어이다. 우연한 행운을 뜻하는 이 표제처럼, 영화는 뜻밖의 만남과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할리우드 로맨스의 한 전형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위의 시편 브루클린, 맨해튼, 천국으로 가는 다리또한 화려한 뉴욕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도시는 많은 영화에서 오래도록 형상화되어 왔던 것처럼 빈손을 쥔 사람들이 모이고”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짐을 싸고 떠나는 꿈의 무대로 그려진다. 그곳이 밤이 어울리는 도시인 까닭은 일차적으로 화려한 거리와 조명들 때문이겠지만, 작고 어두운 스스로의 처지를 잠시 잊고 왠지 그 불빛 속에 동화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곳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이야기가 교차하는 그곳에 역시 놓여 있다. 이스트 강을 사이에 두고 나는 브룩클린다리 아래”, “너는 맨해튼다리 아래서 있다. 빛나는 도시를 동경하던 우리는 우연히 만나 영화처럼 서로에게 이끌린다. 그 의도치 않은 매혹과 이끌림은 내 금빛 파이프 연기가 네게로 스며든 것처럼, “네가 구두를 신고 내 가슴속에 들어온 것처럼어쩔 수 없이 그리된 일일 것이나, 이 세렌디피티한 도시가 너와 나에게 선물한 뜻밖의 행운이기도 하다.

 

   그러한 우연성은 이 세계의 작동방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것은 뜻밖의 만남과 사랑을 주재하는 행운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갑작스런 불행을 안겨다주기도 한다. 너와 나의 운명을 연결해주는 낭만적인 도시의 다리는 “25층에서 오랜 욕설 전화에 시달린 사람이 기절하거나”, 마천루의 승강기를 고치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 화려한 도시에서 오늘 나의 하루가 아름다웠다면”, 누군가에게는 해변으로 검은 모래가 밀려오듯 피할 수 없는 공평한 재앙이 닥친다.

 

   잔인한 건 그 행운과 불행의 문장들 사이에 어떠한 인과 관계도 없다는 점이다. 너와 나의 사랑이 불현듯 이뤄진 것처럼, 누군가의 비극 또한 우리의 사랑과는 무관하게 어찌할 수 없이 생겨난다. “테러를 추모하는 공원에도 조롱꾼은 있고”, 사랑과 평화를 위한 노력의 총량과는 상관없이 전쟁은 일어나고 혐오는 계속된다. 그러니까 이곳은 놀라울 정도의 선의와 두려울 만큼의 악의가, 아무런 관련 없이 한곳에 펼쳐져 있는 차갑고 매끈한 우연의 세계인 셈이다.

 

   일전에 주민현 시인의 작품 은유와 복선을 언급하는 글에서 벤야민의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사례는 점성술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점성술이, 어두운 하늘 속 별자리의 배치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인간의 운명 사이에서 합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유비 관계를 찾아낸다고 말했다.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는 두 대상들을 맞닿아 놓는 것만으로 실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 은유적 연결 이후 양쪽 사이에는 명명 이전에는 없었을 어떤 유형의 힘이 복선처럼 작동하는 듯싶기도 하다.

 

   어쩌면 이 시 또한 요약된 문장요약된 사람들 사이”, 무관심하게 축약된 사람들의 삶과 문장 사이를 잇는 성긴 은유적 매듭의 일종으로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너와 나를 연결했던 브루클린-맨해튼의 다리처럼, 혹은 사라와 조나단이 새긴 운명 같은 서로의 징표처럼, 우연뿐인 도시 속에 기적과도 같은 인과의 흔적을 남기려는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이 차갑도록 매끄러운 세계에 푹신한 천사의 코가 스쳐 간 것 같은 오목한 감촉 하나를 남기기 위해서, 이 비극적인 도시의 슬픔을 모르는 사람들의 무심한 발을 살짝 밟기 위해서”. (*)

 

   조대한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