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思錄에 관해
우대식
朱子가 성리학에 대해 쓴 책 제목이 近思錄이라 했다
近이라는 글자에 놀랐다
이른 새벽부터 내 詩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이 近이라는 말이 천근만근으로 나의 생각을 눌렀다
늦가을 서리가 기와를 타고 녹아내려
이마에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나의 생각은 나에게서 얼마나 떨어진 것일까
누추한 주막에 들어 붐비는 생각의 잔盞을 마시다
도마 위에 놓인 오래된 칼을 보았다
그 칼로 내 생각 아닌 것들을 단번에 쳐내고 싶었다
하여, 나도 가까이 가보고 싶었다
近思해보고 싶었다
詩가 아니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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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는 일찍이 근사록은 사서의 초보라 하여 고전 공부의 중요한 저작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근사록은 성리학 이론을 체계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조선 후기까지 유학자들의 필수문헌이었다. 본래 ‘근사’라는 말은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切問而近思] 인(仁)은 그 가운데 있다”는 논어의 한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우대식 시인의 시선이 근사(近思)에 꽂혀 근사하게 꽃피웠다. 시인의 촉수에 걸려든 근사라는 말이 새로운 감성의 영토에 진입하여 시의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살아 꿈틀대고 있다. 특히 “近”이라는 글자가 절실하고 명료하게 다가와 화자는 시에 대해 궁구하고, 여러 날 이 글자에 붙들려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접신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그 순간은 놀라움과 깨달음의 순간이며 희열과 매혹으로 몸을 떠는 찰나이다. “나의 생각은 나에게서 얼마나 떨어진 것일까”라는 화두를 잡게 된 화자는 비로소 사유의 방향과 내용을 구체화하고자 좀 더 골똘해진다. 생각의 색깔, 모양, 줄기, 뿌리 등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우연히 술집 도마 위에 있는 한 자루의 칼을 보게 된다. 눈이 번쩍 뜨이고 머릿속이 명쾌해진다. 가슴은 뜨겁고 손은 조금씩 떨린다. 목표물이 정해진 화자는 단숨에 “내 생각 아닌 것”을 가차 없이 쳐내기 위해 긴장하고, 온몸의 기운을 한곳으로 모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생각을 입고 산다. 마치 제 옷인 양 한껏 멋을 부리며 현학적 제스처로 자기 과시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체의 감각을 통해 발현된 독창의 사유가 아니라 획일적이고 보편적인 생각의 틀에 길들여져 사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삶이 아니라 타자의 사유를 수용하고 보편의 질서에 쉽게 편입된 비주체의 삶인 것이다. 시 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보편성이라는 낱말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한 적이 있다. 그러나 보편이라는 말은 다수의 정서를 평균화하고 균질화한 결과물이다. 보편의 논리가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시의 화자는 지금까지 그럴듯한 품새로 걸쳐 입고 있던 남의 생각의 덤불을 쳐내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유의 핵심에 이르고자 “近思”를 염원한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近思”야말로 주체 회복의 열쇠이다. 설령 그것이 한 편의 “시”가 아니라 할지라도 가장 근원적 삶의 양식에 대한 기원은 누구나 소망하는 것이다. 존재의 고양은 영성의 힘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고 이러한 실존적 노력을 통해서도 근사하게 실현될 수 있음을 우대식 시인은 한 편의 시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적 노력은 시 이전, 언어 이전의 존재의 심연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시원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지난한 몸짓이다.
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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