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앵두나무와의 가위바위보
심재휘
동네 입구 꽃집 구석에는
잔가지들을 함부로 거느린 나무가 있어서
오고 가는 길에 볼품없더니 산앵두나무란다
산을 버리고 꽃집 구석의 화분에
발목도 없이 웅크리고 앉아
제 몸을 파는 산앵두나무
한철 노숙을 제 얼굴에 드리우고 있어서
많이 야위었다 여기었더니
삼월 어느 저녁엔 나를 불러 연두 주먹을 내보인다
이내 주먹을 펴 보인다
다음엔 필경 분홍의 무언가를 낼 심사인데
나는 연두도 분홍도 못 되는
기껏 빈 손바닥을 쳐다보다가
무엇을 내도 필패이려니 싶어
그냥 그 나무 옆에 집 없는 사람처럼
서 있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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