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산앵두나무와의 가위바위보 - 심재휘

공산(空山) 2020. 4. 11. 09:59

   산앵두나무와의 가위바위보
   심재휘

 

 

   동네 입구 꽃집 구석에는
   잔가지들을 함부로 거느린 나무가 있어서
   오고 가는 길에 볼품없더니 산앵두나무란다
   산을 버리고 꽃집 구석의 화분에

   발목도 없이 웅크리고 앉아
   제 몸을 파는 산앵두나무
   한철 노숙을 제 얼굴에 드리우고 있어서
   많이 야위었다 여기었더니
   삼월 어느 저녁엔 나를 불러 연두 주먹을 내보인다
   이내 주먹을 펴 보인다
   다음엔 필경 분홍의 무언가를 낼 심사인데
   나는 연두도 분홍도 못 되는
   기껏 빈 손바닥을 쳐다보다가
   무엇을 내도 필패이려니 싶어
   그냥 그 나무 옆에 집 없는 사람처럼
   서 있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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