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양귀비에 대한 기억

공산(空山) 2019. 6. 13. 16:43

수많은 꽃에 대한 기억 중에 아주 오래되었지만 뚜렷한 한 무리의 기억들이 있다. 내가 대여섯 살 때 뒤안에 한두 송이 피다가 잊혀져 간 붉은 꽃. 그 꽃에서 여문 씨앗 대궁이() 하나가 초가 지붕 밑 큰방 장농 서랍에서 먼지와 함께 여러 해 동안 묵혀져 있던 기억. 그리고 배탈이 날 때마다 엄마가 눈종지기(작은 종지)에 까맣게 말라붙은 조청을 숟가락총으로 쬐끔 떼어 물에 녹여 주셨는데, 쌉쌀한 그걸 마시면 감쪽같이 복통이 나았었던 기억. 그 꽃에 대한 기억은 그것이 다다. 조청은 뒤안에 피던 그 붉은 꽃의 대궁이를 고아서 만든 것이었다는 것도 꽃의 이름도 내가 좀더 자란 뒤 엄마한테 들어서 알게 되었다. 양귀비, 아편꽃이라고.

 

수년 전(2014. 4.) 두 친구와 함께 중국 서안(西安)에 배낭여행을 갔을 때 마지막 일정으로 화청지(華清池)를 둘러본 적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당 현종과 양귀비(楊貴妃, 楊玉環, 719~756) 영화를 누리던 곳이다. 황제와 귀비가 43의 온천물에서 날마다 목욕하던 연화탕(蓮花湯), 해당탕(海棠湯)도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타락한 태평성세는 잠시였을 뿐. 안녹산의 난이 들이닥치고 피난길에서 그야말로 나라를 기울어지게 한 경국지색(傾國之色) 처벌을 요구받자 현종은 그토록 총애하던 귀비를 내팽개치고 자신의 목숨 부지하기에만 급급했다.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씨앗 하나가 올봄에 어찌하다가 우리집 화분에서 꽃을 피우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나는 먼 옛날의 기억을 잠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관상용으로 몇 포기까지는 재배해도 괜찮다고 알고 있던 이 꽃을, 다시 알아보니 당국의 허가 없이는 한 포기라도 키우면 마약류 관리법에 위배되고 단속에 걸리면 엄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며칠 전에 산가에 가서 아직 씨가 여물지 않은 이 꽃을 뽑아 버렸다. 당 현종의 그 비겁함이 내 피 속에도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심과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중국 서안의 화청지에서(2014. 4. 12.)
화청지 앞에 있는 양귀비의 석고상
황제(당 현종)와 귀비의 욕탕인 해당탕. 옆에는 더 넓은 연화탕도 있었다.
산가에 자란 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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