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진은영

공산(空山) 2019. 5. 21. 15:05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


   봄, 놀라서 뒷걸음질 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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