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성
황인찬
“마음에 병이 나서 잎이 나서 나무가 되었습니다”
말을 마친 나무가 미소 짓는다 그걸 들으며 아니 그런 사연이, 나는 짐짓 놀라고
속으로는 믿지 않으면서도 듣고 있으면
어쩐지 눈물이 난다
“수목원에는 나무가 많다고 들었어요 거기에도 병든 마음이 많이 있어요?"
그런 말을 들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나무는 빛 속에 조용히 서 있었다 차가운 공기에 둘러싸인 채 느리게 생장하고 있었다
“수목원으로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 말을 끝으로 나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상스런 생기만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문을 닫고 방을 나섰다
이 일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다
―『희지의 세계』 민음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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