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다음에 - 박소란

공산(空山) 2019. 3. 16. 11:54

   다음에

   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 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심장에 가까운 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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