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이 위로 갔던 때
송진권
할머니 따라 소쿠리 쓰고
텃밭에 갔을 때
똥 마려워
밭고랑에 똥 눌 때
괭이밥이며 개밥두더지 노래기
노린재 노낙각시 새끼지네들이
다 내 밑을 봤다고 중뿔나게 소문을 내고 다녔을 거고
시꺼멓더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을 거고
삼동네 모두 다 소문은 났을 거고
똥 위에 소문처럼
쇠파리 등에 똥파리 금파리 초파리 파리란 파리는 다 날아들었을 거고
할머니가 뽕잎 따다 밑 닦아 주었을 거고
밑이 위로 가게 하고
바라본 할머니가
쇠물재만큼이나 높기도 했을 거고
내 똥 위에 하얗게 배긴 오디 씨앗들의
훌륭한 매개였던 내 몸이 기특해서
똥도 예쁘게 싸 놓았네 내 새끼 하셨을 거고
밭둑의 뽕나무도 이파리 뒤채며
아유, 내 새끼들 했을 것인데
오늘 어린 딸의 밑을 닦아 주며
밑이 위로 갔던 때를 생각해 보고
참외 씨 배긴 똥이 예쁘다는 생각을 해 보고
참외 씨와 오디 씨가
낄낄대며 깔깔대며
우리랑 어떻게 어울려 살았는지 생각도 해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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