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계산동 성당 - 황유원

공산(空山) 2019. 3. 13. 15:57

   계산동 성당

   황유원

 

 

   요즘엔 침묵만 기르다 보니

   걸음까지 무거워졌지 뭡니까

   한 걸음 한 걸음 지날 때마다 거기 벽돌이 놓여

   뭐가 지어지고 있긴 한데

   돌아보면 그게 다 침묵인지라

   아무 대답도 듣진 못하겠지요

 

   계산 성당이 따뜻해 보인다곤 해도

   들어가 기도하다 잠들면

   추워서 금방 깨게 되지 않던가요

   단풍 예쁘게 든 색이라지만

   손으로 만져도 바스라지진 않더군요

   여린 기도로 벽돌을 깨뜨릴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옛 사제관 모형은 문이 죄다 굳게 닫혀 있고

   모형 사제관 안에 들어가 문 다 닫아버리고

   닫는 김에 말문까지 닫아버리고 이제 그만

   침묵이나 됐음 하는 사람이 드리는 기도의 무게는

   차라리 모르시는 게 낫겠지요

 

   너무 새겨듣진 마세요

   요즘엔 침묵만 기르다 보니

   다들 입만 열면 헛소리라 하더군요

   그러니 한겨울에도 예쁘게 단풍 든 성당은

   편안히 미술관에서나 감상하시는 편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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