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밑이 위로 갔던 때 - 송진권

공산(空山) 2019. 3. 4. 12:31

   밑이 위로 갔던 때

   송진권

 

 

   할머니 따라 소쿠리 쓰고 

   텃밭에 갔을 때 

   똥 마려워 

   밭고랑에 똥 눌 때 

   괭이밥이며 개밥두더지 노래기 

   노린재 노낙각시 새끼지네들이 

   다 내 밑을 봤다고 중뿔나게 소문을 내고 다녔을 거고 

   시꺼멓더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을 거고 

   삼동네 모두 다 소문은 났을 거고 

 

   똥 위에 소문처럼 

   쇠파리 등에 똥파리 금파리 초파리 파리란 파리는 다 날아들었을 거고

   할머니가 뽕잎 따다 밑 닦아 주었을 거고 

   밑이 위로 가게 하고 

   바라본 할머니가 

   쇠물재만큼이나 높기도 했을 거고 

   내 똥 위에 하얗게 배긴 오디 씨앗들의 

   훌륭한 매개였던 내 몸이 기특해서 

   똥도 예쁘게 싸 놓았네 내 새끼 하셨을 거고 

   밭둑의 뽕나무도 이파리 뒤채며 

   아유, 내 새끼들 했을 것인데 

 

   오늘 어린 딸의 밑을 닦아 주며 

   밑이 위로 갔던 때를 생각해 보고 

   참외 씨 배긴 똥이 예쁘다는 생각을 해 보고 

   참외 씨와 오디 씨가 

   낄낄대며 깔깔대며 

   우리랑 어떻게 어울려 살았는지 생각도 해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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