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공산(空山) 2015. 11. 19. 20:56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온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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