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담쟁이 - 도종환

공산(空山) 2015. 11. 23. 21:28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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