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나무의 유적 - 이은재

공산(空山) 2015. 11. 19. 22:12

   나무의 유적
   이은재


   남산동 허름한 식당 구석진 자리
   통나무의자 하나 앉아 있다
   나이테로 걸어온 백년
   나무 유적을 만난다

   나무의 생은 둥글지만
   끊어질 듯 이어지는 꿈길 있어
   나무는 쉼 없이 걸었으리라

   꽃 피는 오솔길
   천둥 치는 들판
   술 취한 모롱이 돌아
   언 강에 발목 빠뜨렸으리라

   갈수록 좁아지고 어둑해지는 골짜기
   길을 잃기도 했으리라

   푸른 날들이,
   제 몸에 새겨 넣은 파문이
   하얗게 마르고 있다

   나는 동그랗게 앉았다


  『나무의 유적그루,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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