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쏙독새 - 전기철

공산(空山) 2017. 10. 5. 23:00

   쏙독새
   전기철

 

 

   쏙독, 핀다
   숲의 잎술들, 지미 핸드릭스의 작은 날갯짓, 잠들지 못한 편지의 방언들

 

   너는 티브이와 사랑에 빠졌다 티브이 이름은 민희다 민희는 나 몰래 이웃집 영화 감독과 할근거렸다

 

   너는 빌어먹을이란 단어로 교회를 세우고
   젠장에 촛불을 쓰러뜨렸다

 

   커피는 습이고 강물은 신음소리다

 

   새가 되고픈 물고기가 있다
   희뜩, 환유처럼
   검은 망토를 입은 시계바늘이 꺽꺽 운다

 

   그날은 수요일이었고
   한 외판원이 길 건너 여인숙에서 죽었다
   한 주의 중간에 갇힌

 

   너의 얼굴이 진다
   쏙쏙, 촉촉촉, 핀다

    

 
   ㅡ「시와소금」2017. 가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몸 전체가 낙엽과 비슷한 보호색을 띠고, 낮에는 나뭇가지에 가슴을 붙이고 나뭇가지와 수평으로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쏙독새, 어두워지면 곤충을 찾아 날아다니는 야행성. 밤이면 "쏙독, 쏙독, 쏙독" 또는 "쏙, 쏙, 쏙, 쏙"하며 빠르게 반복해서 운단다.
   시적 화자는 쏙독새 소리를 처음과 끝부분에 단절적으로 배치(,)하면서 ‘피다’와 연결시키고 있다. 반면 ‘너’의 얼굴은 ‘지다’와 연결한다. 그래서 쏙독새 우는 소리가 들리는 밤은 너의 생각에 갇혀 있다는 것.
   ‘너’는 숲의 입술, 지미 핸드릭스, 또는 잠들지 못하는 편지의 방언 같은 존재. 그것들은 너처럼 새로운 것이며 낯설고 난해한 것들. 혁신적 기타리스트로서 지미 헨드릭스의 의미는 연주의 거의 모든 것을 완성했다는 것. 와와 페달, 퍼즈 박스, 유니바이브 등 이펙터를 적극 활용한 새로운 연주와 피드백 주법을 비롯해 앰프와 음향장치를 폭넓게 활용하는 다양한 연주기법 등
   그래서 너는 세상과 화합하기 어렵다. ‘할근거렸다’, ‘빌어먹을’, ‘젠장’, ‘습’, ‘신음’, ‘꺽꺽 운다’ 등으로 싸운다. 그래서 쏙독새가 애 끊어지게 우는 밤의 세상은 ‘너’를 지우는 악마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보호색과 야행성으로 살아가는 쏙독새 같은 존재가 아닐까. 너는, 우리는.(서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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