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7

접목을 하며

어릴 적에, 그러니까 국민학교 오륙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실과' 교과서에 나온 접목법을 배우고 나서 앞마당의 감나무 가지를 꺾어 뒤안의 돌감나무에 접붙이기를 해 본 것이. 그때가 가을이라서 가지접은 못하고 눈접을 몇 군데에다 몇 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끝내 실패를 하고 말았었다. 1주일쯤 후에 잎자루가 떨어져야 눈접이 성공한 것인데, 잎자루가 말라붙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듬해 어느 봄날에 그 돌감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에다 아버지와 함께 가지접 붙이기를 하여 성공은 했지만, 그것도 몇 년 잘 자라다가 바람에 접목 부위가 부러지고 말아 결국은 감이 열리는 것을 볼 수는 없었다. 그 뒤부터 내게는 접목이 어렵게만 느껴져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었다. 나무를 번식시킬 필요가 있을 때는 씨앗을 심..

텃밭 일기 2020.04.06

그래도 봄은 왔다

보수 야당과 언론들이 만날 정부 비판에 열을 올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외신들은 한국의 코로나19에 대한 탁월한 진단 능력과 방역 시스템, 투명한 리더십에 감탄하며 하나같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어제까지 발생한 확진자는 총 7,755명(대구 5,794명), 사망자는 60명에 이르고 있다. 며칠 전부터는 확진자 수의 증가세가 좀 주춤해졌다고 한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이탈리아, 이란, 일본,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도 바이러스는 크게 번지고 있다. 전 세계가 난리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봄은 왔다. 무언가 하긴 해야 되는데, 가만히 앉아서 오는 봄을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인데... 그래서 지난주엔 봉무동 뒷산 어귀의 오솔길가에서 겨울을 견디고 파랗게 자라고 있는 돌..

텃밭 일기 2020.03.11

장마가 왔다

기다리던 장마가 왔다. 먼 남쪽 바다에 머물러 있던 장마전선이 북상하여 드디어 낮부터 많은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흘이 멀다하고 텃밭에 물을 주느라 힘들었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 가뭄에 잎이 비틀어져 있던 고추, 토마토, 가지, 상추, 부추, 양배추, 들깨, 울콩, 생강, 호박… 어느 것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할 것이다.물소리가 들리지 않던 개울에도 물이 다시 요란하게 흘러갈 것이다. 그 속에 살던 생명들도 다시 제 세상을 만난 듯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내가 자주 가는 단산지를 포함한 우리 나라의 모든 호수에 물이 가득 찼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적 의도가 전혀 섞이지 않은 얘기인데, 이번 장마땐 비가 많이 와서 저 썩어가는 4대강의 닫혀있는 수문들도 활짝 좀 열렸으면 좋겠..

텃밭 일기 2019.06.26

다시 텃밭에서

지난해 시월 하순에 심었던 마늘과 양파가 온화했던 겨울 탓인지 풍작이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마늘쫑도 좀 뽑고, 주먹 만하게 굵어진 양파도 몇 알 맛보려고 뽑았다. 그리고 예초기의 시동을 걸어 짊어지고 풀이 무성해진 다섯 그루의 복숭아 나무 밑과 밭 주변, 산소 가는 오솔길의 풀을 베었다. 지난 삼월 말부터 신변에 생긴 '경황없음'으로 인하여 그동안 텃밭에 자주 못 오다가 그 경황없음이 조금씩 숙지게 되자 최근에는 가끔 들를 수 있게 되었다. 고사리밭에서 고사리를 몇 번 꺾어 삶아 말리기도 하고, 마늘과 양파밭에 물도 주었다. 얼마 전에는 고추 모종(30포기), 토마토(10포기), 가지(5포기), 오이와 파프리카(3포기씩), 고구마 모종(1단), 양배추와 브로콜리(10포기씩)를 사다 심었고, 생강도 호기..

텃밭 일기 2019.05.22

폭염

유래없는 폭염이 보름 이상 지속되고 있다. 뉴스에 의하면 오늘 경산 하양이 40.5도, 영천 신녕이 40.4도로 역대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고 한다. 창문이 활짝 열린 산가 실내에 걸려 있는 알코올 온도계는 오후 세 시가 지나자 33도를 가리켰고, 이 온도계를 바깥으로 들고 나가 감나무 그늘에 걸었더니 34도를 가리켰다. 어제까지는 실내 32.5도가 최고였는데, 오늘 이곳의 올여름 최고 온도를 갱신한 셈이다. 그래도 부근의 대구와 경산, 영천의 40도에 육박하거나 넘은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시원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4도밖에 안 되는 지하수 수돗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한참 동안은 괜찮다. 해가 서산에 걸릴 때부터는 산바람이 내려와 시원하고, 새벽에는 홑이불을 덮어야 될 정도다. 텃밭의 사정을 얘기하자..

텃밭 일기 2018.07.26

바위가 있는 나의 텃밭

부모님 평생의 땀이 배어있고 내가 또 가꾸어가야 할 터전인 집앞 텃밭 입구엔 간판처럼 또는 기념비처럼 우뚝 선 바위가 하나 있다. 내가 십 년쯤 전에 축대를 쌓고 경지정리를 하면서 중장비를 동원하여 이 바위를 세웠는데, 그 때 옆에서 지켜보며 이 아들을 대견해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때 심었던, 이 바위곁의 땅거죽을 잔디처럼 덮으며 번져가는 좀누운향나무는 이제 많이 자랐다. 아버지가 이십 년 전쯤에 심으신 단감나무도 바위와 썩 잘 어울린다. 조금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내가 가끔 나팔을 불 때 무대로 쓰거나 여럿이 앉아 새참이라도 먹으며 쉴 수 있는, 주목과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노간주나무, 갈매나무 등으로 둘러쌓인 멋진 반석도 둘 있다. 또 여차하면 '이랴!'하고 걸터앉아, 일..

텃밭 일기 201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