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송재학

공산(功山) 2017. 1. 12. 13:55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송재학(1955~ )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 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 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 주네

   결코 눈뜨지 말라

   지금 한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 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 만질 때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민음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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