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백합

공산(空山) 2015. 6. 19. 22:32

고향집에 오면 돌담 옆의 풀 한 포기에도 추억이 전설처럼 서려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백합들만 하더라도 뿌리를 얘기하자면 45년 전쯤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알파벳을 처음 접하고 Rose, Lily 같은 단어도 배울 무렵, 급우 하나가 제집 꽃밭에서 캐어 온 것이라며 이 꽃의 구근 두어 개를 내게 주었던 것이다. 그 때만 해도 나는 담밖에 지천으로 피는 나리와도 닮은 이 꽃이 꽃말 만큼이나 순결하고 이국적인 꽃이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그토록 많이 흘렀건만 변함없이 돌담 앞에서 해마다 꽃을 피우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낮엔 바빠서 제대로 쳐다볼 겨를이 없었지만, 늦은 저녁을 먹고 나서야 뜨락에 나와 느긋하게 바라보며 사진도 찍었다. 실은, 이 꽃은 본디 날이 저물어야 그 청순한 자태가 돋보일 뿐만 아니라 짙은 향기를 내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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