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

하나씩의 별

공산(空山) 2016. 2. 25. 23:27

   하나씩의 별

   이용악(1914~1971)

 

 

   무엇을 실었느냐 화물열차의

   검은 문들은 탄탄히 잠겨졌다

   바람 속을 달리는 화물열차의 지붕 우에

   우리 제각기 들어누워

   한결같이 쳐다보는 하나씩의 별

 

   두만강 저쪽에서 온다는 사람들과

   쟈무스*에서 온다는 사람들과

   험한 땅에서 험한 변 치르고

   눈보라 치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남도 사람들과

   북어 쪼가리 초담배 밀가루 떡이랑

   나눠서 요기하며 내사 서울이 그리워

   고향과는 딴 방향으로 흔들려 간다

 

   푸르른 바다와 거리거리를

   서름 많은 이민 열차의 흐린 창으로

   그저 서러이 내다보던 골짝 골짝을

   갈 때와 마찬가지로

   헐벗은 채 돌아오는 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헐벗은 나요

   나라에 기쁜 일 많아

   울지를 못하는 함경도 사내

 

   총을 안고 뽈가**의 노래를 불르던

   슬라브의 늙은 병정은 잠이 들었나

   바람 속을 달리는 화물열차의 지붕 우에

   우리 제각기 들어누워

   한결같이 쳐다보는 하나씩의 별

 

 

   ― 1945년

 

   * 쟈무스 : 자무쓰(佳木斯).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도시

   ** 뽈가 : 볼가강. 러시아 서부를 흐르는 강.

   ― 곽효환 엮음 「이용악 시선」, 지식을 만드는 시선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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