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길로 가자
이용악
우러러받들 수 없는 하늘
검은 하늘이 쏟아져내린다
온몸을 굽이치는
병든 흐름도 캄캄히 저물어가는데
예서 아는 이를 만나면 숨어버리지
숨어서 휘정휘정 뒷길을 걸을라치면
지나간 모든 날이 따라오리라
썩은 나무다리 걸쳐 있는 개울까지
개울 건너 또 개울 건너
빠알간 숯불을 비웃이 타는 선술집까지
푸르른 새벽인들 내게 없었을라구
나를 에워싸고
외치며 쓰러지는 수없이 많은 나의 얼굴은
파리한 이마는 입술은 잊어버리고저
나의 해바라기는
무거운 머리를 어느 가슴에 떨어뜨리랴
이제 검은 하늘과 함께
줄기줄기 차거운 비 쏟아져내릴 것을
네거리는 싫어 네거리는 싫어
히 히 몰래 웃으며 뒷길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