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반달곰이 사는 법

공산(空山) 2016. 1. 6. 21:33

   반달곰이 사는 법

   송찬호

 

 

   지리산 뱀사골에 가면 제승대 옆 등산로에서 간이 휴게소를 운영하는 신혼의 젊은 반달곰 부부가 있다 휴게소는 도토리묵과 부침개와 간단한 차와 음료를 파는데, 차에는 솔내음차, 바위꽃차, 산각시나비팔랑임차, 뭉게구름피어오름차 등이 있다 그중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것은 맑은바람차이다

 

   부부는 낮에는 음식을 팔고 저녁이면 하늘의 별을 닦거나 등성을 밝히는 꽃등의 심지에 기름을 붓고 등산객들이 헝클어놓은 길을 풀어내 다독여주곤 한다

 

   그런데, 반달곰 씨의 가슴엔큼직한 상처가 있다 밀렵꾼들의 총에 맞아 가슴의 반달 한쪽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일전에 반달보호협회에서도 찾아왔다 그대들, 곰은 이미 사라져갈 운명이니 그 가슴의 반달이나 떼어 보호하는 게 어떤가 하고,

 

   돌아서 쓸쓸히 웃다가도 반달곰 씨는 아내를 보자 금세 얼굴이 환해진다 산열매를 닮아 익을 대로 익은 아내의 눈망울이 까맣다 머지않아 아기 곰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도 우리는 하늘을 아장아장 걷는 낮에 나온 반달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험한 산비탈 오르내리며 요즘 반달곰 씨는 등산 안내까지 겸하고 있다 오늘은 뭐 그리 신이 나는지 새벽부터 부산하다 우당탕 퉁탕……, 어이쿠 길 비켜라, 저기 바위택시 굴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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