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에서 4
신대철
황무지군요. 언제 가을집으로 가죠?
모래폭풍이 지나간 다음에요.
저 양떼를 다 몰고요?
나중에 어린 양과 종자만 남겨야죠.
노인은 뒤쳐진 양을 가리키며 저렇게 늙은 양은 겨울을 못 넘긴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듯이 흑염소가 늙은 양을 몰아붙인다. 늙은 양이 재빨리 무리에 합류한다. 흐름이 잠시 늦춰지다 빨라진다.
날이 저물고 새들 높이 날아가고 수태차 향기에 홀연히 사라지는 흙먼지. 황막한 고요. 그 속에 피어오르는 잊혀진 얼굴 하나하나 감싸는 황야의 빛은 어디서 오는가? 거친 생명붙이들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숨결이 아니라면?
노인은 울안에 양떼를 몰아넣고 코담배를 피운다. 양을 잡으려는 것일까? 하늘이 무겁게 땅을 누른다. 그는 땅껍질만 남은 몸으로 왔다 갔다 하다 흑염소를 보고 울안으로 들어간다. 흑염소가 앞을 가로막는다. 늙은 양을 끼고 빙빙 돈다. 소리 없이 어둠이 깔린다. 늙은 양은 가만히 서 있다. 머리 위에 가물거리는 별빛 거느리고 온순하게.
―「바이칼 키스」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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