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리스크 나무 아래
신대철
모래폭풍이 땅을 뒤집는 순간 황야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두운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푸른 하늘, 붉은 흙먼지, 야생의 숨결을 받은 것들은 숨 돌릴 새 없이 몸부림쳤다. 무엇에 쫓겨 가는지 짐승들이 미친 듯이 달렸다. 밤새 살아남은 발자국들은 거대한 먼지굴 속에서 굴러 나와 먼지를 끌고 달렸다. 황야에 들어갈수록 긴 꼬리가 생기고 몸이 팽창했다. 달궈진 시간만 소멸하면서 생성되었다. 나는 내가 인간도 짐승도 아니라는 것 말고는,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무수히 태어난다는 것 말고는 무엇이 소멸 속에서 생성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평선은 둥글고 향긋해도
그 중심은 깊고 황막한 곳
다시 황야로 들어간다면 모래폭풍 넘어 타마리스크 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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