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포리 석화
이자규
파래 섞은 석화 물회, 하동 광포리 지나
늙을 줄 모르는 달빛만 우수수
노량대첩을 아는 바람이
대교 아래 통통배 왜적 같은 해풍이 거칠다
잘살자는 고속기계문명으로 노쇠해진 닻을 보다
방학 때면 남해군청 앞 할머니 댁으로 갔던 단발머리
노를 저어 건넜던 나룻배도 사라진 지 오래
파도가 센 날은 이쪽 여인숙에서 정유재란을 떠올리며
물별들과 밤을 새웠고
해상봉쇄라는 역사적 기억 속에 들어
한참을 출렁거렸던 바다 울음에 가슴이 아렸다
광포 바닷가에서 따온 석화를 동산처럼 쌓아놓고
하동김을 묶어 냈던 고모는
이젠 녹슨 어구만 닦으며 하는 일이 없다
금오산 허리를 돌아 광양만으로 이어지는 산업차량 행렬이
왜적 풍을 닮았다
―『붉은 절규』 시산맥사 202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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