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1926~2006)
진실을 다 알기에는
이십오 년이라는 세월은 짧았을까요
아흔의 당신을 상상해 본다
여든의 나를 상상해 본다
어느 한쪽이 노망이 들고
어느 한쪽이 기진맥진하고
어쩌면 둘 다 그리 되어
영문도 모른 채 서로 미워하고 있는 모습이
언뜻 스쳐간다
어쩌면 또
푸근한 할배와 할멈이 되어
자 갑시다 하고
서로 목을 조르려 해도
그 힘조차 없어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
하지만
세월만은 아니겠지요
단 하루만의
벼락같은 진실을
품에 안고 살아나가는 사람도 있는 걸요
―『이바라기 노리코 선집』 다니카와 슌타로 엮음, 조영렬 옮김, AK,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