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의 사랑
허수경(1964~2018)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썩었는가 사랑아
사랑은 나를 버리고 그대에게로 간다
사랑은 그대를 버리고 세월로 간다
잊혀진 상처의 늙은 자리는 환하다
환하고 아프다
환하고 아픈 자리로 가리라
앓는 꿈이 다시 세월을 얻을 때
공터에 뜬 무지개가
세월 속에 다시 아플 때
몸 얻지 못한 마음의 입술이
어느 풀잎자리를 더듬으며
말 얻지 못한 꿈을 더듬으리라
―『혼자 가는 먼 집』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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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200일 무렵부터 아이에게는 영속성이라는 감각이 발달하게 됩니다. 영속성은 대상이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여기는 일입니다. 덕분에 보호자가 문 뒤로 숨었을 때 불안해하며 울었던 이전과는 달리 문 뒤에서 장난을 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웃을 수 있습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일순간 떼면서 소리를 내는 아웅 놀이를 즐기는 것도 이때이고요. 여름 가고 가을 밀려드는 이 시기, 영속성이라는 감각을 다시 생각합니다.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물론 아주 없던 일이 된 것도 아닐 겁니다.
박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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