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동안의 일
남길순(1962~ )
오이 농사를 짓는 동호씨가 날마다 문학관을 찾아온다
어떤 날은 한 아름 백오이를 따 와서
상큼한 오이 냄새를 책 사이에 풀어놓고 간다
문학관은 날마다 그 품새 그 자리
한 글자도 자라지 않는다
햇볕이 나고 따뜻해지면
오이 자라는 속도가 두 배 세 배 빨라지고
화색이 도는 동호 씨는 더 많은 오이를 딴다
문학관은 빈손이라
해가 바뀌어도 더 줄 것이 없고
문학을 쓸고
문학을 닦고
저만치 동호 씨가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다
갈대들 길 양쪽으로 비켜나는데
오늘은
검은 소나기를 몰고 온다
문학관을 찾은 사람들이 멍하니 서서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다
지붕 아래 있어도 우리는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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