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쓰세요
― 경상도 사투리 2
구순희
공중분해된 사투리를 불러들여 근처 수선집으로 갔다
ㅆ과 ㅅ의 발화는 수선 불가라며 돌려보내기에
몇 번 헛바퀴 돌다가 경상도라고 적힌 간판 속으로 쑥 들어갔다
그 집 주인은 벽에 붙은 된소리 몇 개를 읽어 보라고 한다
경기도는 겡기도, 경상도는 겡상도, 결혼은 게론, 나는은 나넌, 들은 덜로 읽고
쌀집은 살집, 쌍문동은 상문동, 썰매는 설매, 은행은 언행, 음악은 엄악, 의사는 이사, 형님 은 헹님이라고 하니
제대로 잘 읽었다고 한다
ㅆ은 ㅅ, 모음 ㅡ는 ㅓ로 발음하는 건 지역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발화법이라며
된소리의 높은 고개는 수선이 안 된다고
다른 사람들도 왔다가 못 고치고 돌아갔으니
그냥 아껴서 잘 쓰라고 한다
― 『월간 시인』, 20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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