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무량사 한 채 - 공광규

공산(空山) 2015. 12. 21. 19:02

 

   무량사 한 채

   공광규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비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꽃살문 스치는 바람소리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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