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식

정선을 떠나며

공산(空山) 2022. 3. 19. 21:09

   정선을 떠나며

   우대식

 

   파울첼란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었던가

   아름다운 시절은 흩어져 여자의 등에 반짝인다고

   시선을 거둔다

   운명이란 최종의 것

   정선 강가에 밤이 오면

   밤하늘에 뜨는 별

   나에게 당신은 그러하다

   성탄절의 새벽길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기찻길 옆 제재소에서는

   낮은 촉수의 등이 켜지고

   이미 오래전에 예언한 미래가

   사라지는 것들을 받아내고 있다

   선명한 모든 것들을 배반하며

   산기슭으로 흐르는 눈발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그리는 일은 또 언제나 부질없다

   가끔 당신을 생각한다

   당신을 생각하며 밥을 먹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밥을 남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사랑이다

 

 

   --시와 표현2013. 가을호

   -- 『베두인의 물방울』 여우난골,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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