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음,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나라
손현숙
능소화 꽃물이 하늘을 태우는 동안이었을 거다. 우레가 가는 길을 천둥이 따라가고, 머리 위로 뭉게구름 사소하게 다녀간 후, 꽃잠에서 꽃잠으로 날아가는 나비를 비스듬히 좇고 있었다. 반백년이 흐르고, 책장 한 장을 넘겼을 뿐인데, 낮별이 사닥다리를 타고 반짝거렸다. 아침이 한낮을 사시(斜視)처럼 데려왔다. 바람은 비에 젖어 무지개다리를 물에 묻었다. 색(色)과 향(香)을 불러오는 중이라 했다. 물에 불은 꽃잎이 담장을 기어오른다. 고양이 비음으로 허공에 한 금 긋는다. 그림자를 등진 사내가 햇빛을 털면서왔다, 갔다. 그의 뒷덜미에서 목소리가 부풀었다. 졸음처럼, 남서쪽에서 잠비가 올라오는 중이라 했다. 오만 년 전의 이야기다.
―《문학의 오늘》 2021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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샵과 플랫 사이 거기 어딘가에 반음이 존재합니다. 음과 음 사이 복잡하고 난해한 곳, 뭐라고 딱 잘라 설명하기 어려운 그곳에서 아름다움이 탄생합니다. 미도 아니고 파도 아닌 그 어디쯤에 천년을 날아와 꽃에서 꽃으로 옮겨 다니는 나비가 있는 걸까요? 완벽한 것들 사이에 끼인 불완전하지만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바로 반음의 세계입니다. 마치 시의 행간처럼 말입니다. / 최형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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