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주하림 - 우리는 마지막 꿈에 오면 전혀 다른 연인이 된다 / 시평 - 방민호

공산(空山) 2021. 10. 7. 22:04

   우리는 마지막 꿈에 오면 전혀 다른 연인이 된다

   주하림

 

 

   그 삼사일을 떠올리면 빗소리로 만들어져 빗소리에 잠기는 집이 생각나고 서로의 기별을 묻지 않는 우리가 그 안에 있다 마치 장난감집을 갖게 된 어린 주인의 힘에 떠밀려 그 곳에 앉아 있는 것처럼, 예전 긴 바다의 주인에게 내가 화판을 옆구리에 끼고 정신에 관해 지껄이던 시절 정신에 관한 것 그런 것은 도무지 쓸모가 없어서

 

   당신의 마음은 나를 허물지 않으려는 해변을 눈치 챌 것이다 아니 눈치 챈 해변이 신기루를 거두어 우리를 작은 테이블에 앉힐 것이다 한숨과도 같은 포옹 나는 이번 생 아닌 곳에서 어떤 미술학교에서 당신을 보았으며 아주 날카로운 인상의 선생으로부터 당신의 연락처를 받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다는 것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은 축축한 목젖으로 처음에는 깃털이 그 다음에는 새가 빠져나간 새의 주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이 화판이나 정신과 마찬가지로 쓸모가 없었다 내겐 당신뿐이었으므로) 나는 어떤 한량들에게 걸려 밤길에 이가 두 개나 부러진 것까지 이야기하고도 왜 우리를 관두어야 하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비가 오는 방 홀로 두고 온 나의 귀걸이 한 짝과 당신이 들어 올리던 허리와 편지와 리본으로 묶어 둔 빵 당신이 수염을 자르면 밖은 너무 춥고 답답해 당신은 나의 불구덩이 속에서 아무것도 꿈꾸지 않았을까 가령 사랑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해도 당신 집 근처에 큰 저수지가 있어 나는 슬픔에 잠겨 검은 날개를 질질 끌고 돌아다녔지 다음으로 무엇도 읽지 않고 무엇도 고독일 리 없는, 우리는 마지막 꿈에 오게 되면 전혀 다른 연인이 되어 있다

 

 

   — 『유심2013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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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하림 : 1986년 전북 군산 출생. 서울 성장. 단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9년 제9회 창비신인시인상 수상. 시집 비벌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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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젊은 시인들에 매우 인색한 편이어서 좀처럼 논의에 올리지 않는 사람이다. 젊다는 것은 훈장이 아니다. , 한 일이 있어야 훈장을 받는 게 아닐까. 젊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직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 때문에 기대를 품게 되는 것이지 아무 말이나, 아무 글이나 쓰면서 용용 죽겠지, 이건 모르겠지, 하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 표정이 바로 훈장이 되는 것은 아니란 말씀이다.

 

   김행숙 시인은 벌써 꽤 관록이 붙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 시인이 날렵하게 운을 달려가는 것을 매우 즐겁게 감상하곤 한다. 부디 가라앉지 말지어다, 쉬고자 하면 느려지고, 느려지면 가라앉는 법이니. 하지만 세상을 자기 안에 끌어안아 자기 목숨처럼 괴로워하는 젊은 시인을 보지 못했다. 저기 보도블록을 배를 밀며 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도 되는 듯 괴로워하는 젊은 시인을 보지 못했다. 다들 자신의 행운법이 얼마나 훌륭한지 보라고들 뽐내는 데 여념 없다. 내 개성, 내 상상력이 얼마나 기발한지 보시오들. , 안 보련다. 못 보아 주겠다. , 대단하다고. 당신의 시문장이 얼마나 졸렬한지 보시오, , 제발.

 

   주하림 시인은 나이는 서른 살이 안 되었고, 가슴에 나비 문신이 있고, 원고료를 받아야 시를 쓰겠다고 하는, 맨날 시나 쓰지 정해진 일은 별로 없는 시인이다. 내가 잠시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그렇다는 말이다. 시는 아주 길고 읽는 이를 깜짝 놀라게 하는 기발한 상상력이 있는가 하면, 그 사이 사이에 뭔가 세상을 생각하는 빛이 엿보이는 시인이다. 정말 그러한지는 알 수 없다. 포즈가 어느 만큼이나 실체적인지 잘 알 수 없으므로. 하지만 김행숙 시인처럼 이 시인에게도 상상력을 받쳐주는 파토스가 있음은 분명하다.

 

   나는 이 시인의 우리는 마지막 꿈에 오면 전혀 다른 연인이 된다를 읽으며 생각한다. 당신의 그 ‘“불구덩이”’에 방향을 더 확실히 주라. 더 각도를 주라. 당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독자를 위해 각도를 더 날카롭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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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 문학평론가ㆍ시인ㆍ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유심> 20138월호, [월평] ‘시와 사물의 각도에 대하여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