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해바라기
김중식 (1967~ )
이 세상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가자,
해서 오아시스에서 만난 해바라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겠으나
딱 한 송이로
백만 송이의 정원에 맞서는 존재감
사막 전체를 후광(後光)으로 지닌 꽃
앞발로 수맥을 짚어가는 낙타처럼
죄 없이 태어난 생명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성모(聖母) 같다
검은 망사 쓴 얼굴 속에 속울음이 있다
너는 살아 있으시라
살아 있기 힘들면 다시 태어나시라
약속하기 어려우나
삶이 다 기적이므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사막 끝까지 배웅하는 해바라기
―『울지도 못했다』 문학과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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