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박태현의 「해」- 서범석

공산(空山) 2020. 5. 5. 20:10

   해

   박태현

 

 

   검은 보자기에 아버지가 괭이로 구멍을 내시자

 

   풀려난 새들이 산 너머에 있는 해를 물어다 놓았다

 

   어머니는 그 해를 들판에 호미로 온종일 숨기셨다

 

   그러나 아이들은, 숨겨놓은 그 해를 연필로 찾아내어 한 조각도 남김없이 뜯어먹고 있었다

 

   더 검은 보자기에 싸이는 줄도 모르고 뜯어먹고 있었다

 

 

   ―『한국동서문학, 2018 여름.

 

   <시 읽기>

 

   시는 본질적으로 짧은 형식으로 그려진다. 도 그렇다. 불과 5. 그러나 11연으로 처리함으로써 행 사이마다 빈 줄이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으라는 시인의 보이지 않는 요구이며, 하루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천천히 이동했음을 독자에게 암시하고 있는 장치이다. 그렇다. 시는 짧은 형식 속에 암시적 형상화를 통해 언어미를 직조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를 그 그림 속에 불러들여 생각하도록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서정적 경과의 시간을 거치다 보면 이 시의 의미망도 조금씩 뚜렷해진다. 처음과 끝 부분에 놓인 검은 보자기는 해가 없는 시간의 이미지이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해뜨기 전에 괭이로 농업노동을 시작하신 근면한 분이다. 이걸 검은 보자기에 아버지가 괭이로 구멍을 내시자로 낯설게 바꾼 것이다. 이렇게 묘사는 독자를 생각하게 만들고 그 결과 언어의 아름다운 맛에 독자를 빠뜨린다. 아버지의 괭이 소리에 아침이 밝았다는 사실을, 시인은 풀려난 새들이 산 너머에 있는 해를 물어다 놓았다로 묘사함으로써 신기한 아침 그림을 묘사한다. 의미는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 이런 아름다운 그림 앞에서는. 그리고 해가 비치는 하루 종일 어머니는 밭을 매셨다는 내용을, ‘어머니는 그 해를 들판에 호미로 온종일 숨기셨다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연필로 찾아내어 한 조각도 남김없이 뜯어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연필은 공부도 좋고 놀이도 좋다. 의미의 자장에서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종일 어머니는 해를 숨겼고, 아이들은 찾아내어 뜯어먹었다는 신기하고 신선한 맛만 즐기면 된다. 그러면서 더 검은 보자기에 싸이는 줄도 모르고뜯어 먹는다는 끝 부분에 이르러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관한 등장인물들의 대응이나 시인의 암시에 대하여 내용적 사색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선명한 그림은 결코 아니다. 일과 놀이(또는 공부)에 대한 생각, 하루라는 시간에 대한 생각, 미래에 대한 무지 또는 예지에 관한 생각 등 어떤 것도 분명한 그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인의 놀라운 언어놀이에 동참하여 즐거움을 맛보지 않았는가. 그러면 되는 것이다. 의미적 열매는 독자마다 수확량이 다를 것이다. 달라야 한다. 시인은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설명이 아닌 언어의 꽃을 그려 놓는 일이 시인의 직무이다. (서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