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의 힘
백무산 (1955~ )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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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산 시인의 시 ‘낙화’에는 이런 시구가 나온다. “우리 몸에 낙화의 시간이 지워졌다/ 별이 뜨는 낙화의 시간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정지의 감각이다.” 시인은 전력 공급이 수월하지 않은 나라에서 정전을 경험하면서 전력이 뚝 끊어진 그 시간 동안을 ‘낙화’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지속의 시간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문명 시대의 세태를 돌이켜보자고 말했다.
모든 게 너무 빠르게 내달리려고만 한다. 마치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바퀴처럼. 때때로 운동은 멈추게 해야 한다. 속도를 조금 늦춰 느리게 가거나 멈췄을 때 시야와 생각이 열리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정지해서 지금 여기를 사유할 때 미래가 보이고, 스스로를 볼 수도 있다. 왜 달려가는지조차 모르고 달릴 것이 아니라 정지해서 숨을 돌릴 때 달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중도에 멎거나 그치게 해서 한 번 돌이킬 때, 혹은 나의 안팎과 시간을 단순하고도 간소하게 할 때 갈 곳이 잘 보이고 또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다. “씨앗처럼 정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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