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바라보다가 문득 - 박경희

공산(空山) 2019. 11. 14. 17:20

   바라보다가 문득
   박경희


   갈바람이 흰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새 날아간 자리 가지처럼 파르르 눈동자 떨리던 사람
   바스락거리는 별을 끌어다가 반짝, 담배에 불붙이던 사람
   산등에 걸린 달을 눈으로 담은 사람
   흙 파인 돌계단에 앉아 찬찬히 처마의 달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벼 바심 끝난 논바닥에 뒹구는 바람을 끌어다가
   옷깃 안으로 여미던 사람
   문득, 돌아선 곳에서 나를 달빛 든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

   그 사람

   바라보다가 고라니 까만 눈으로 바라보다가 잡으려 하니
   그 자리에 별이 스러졌다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창작과비평사, 2019.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왕시장 - 허진석  (0) 2019.11.27
꼬막 - 박노해  (0) 2019.11.16
참 좋은 날 - 박경희  (0) 2019.11.14
붕어빵 - 류인서  (0) 2019.11.11
자연법 - 권달웅  (0) 2019.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