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꼬막 - 박노해

공산(空山) 2019. 11. 16. 07:49

   꼬막

   박노해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꼬막을 삶는 일은 엄숙한 일

   이 섬세한 남도의 살림 성사는

   타지 처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모처럼 팔을 걷고 옛 기억을 살리며

   싸목싸목 참꼬막을 삶는다

 

   둥근 상에 수북이 삶은 꼬막을 두고

   어여 모여 꼬막을 까먹는다

 

   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졸깃거리는 맛

   나가 한겨울에 이걸 못 묵으면 몸살헌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

 

   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 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아니 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태풍이 안 오셨다는 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읍써서 바다와 갯벌이

   한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

 

   근디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

   자네가 감옥 안 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

   이 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정권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 거 말고 말여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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