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저녁이 올 때 - 문태준

공산(空山) 2019. 5. 27. 11:32

   저녁이 올 때

   문태준


   내가 들어서는 여기는
   옛 석굴의 내부 같아요

   나는 희미해져요
   나는 사라져요

   나는 풀벌레 무리 속에
   나는 모래알, 잎새
   나는 이제 구름, 애가(哀歌), 빗방울

   산 그림자가 물가의 물처럼 움직여요

   나무의 한 가지 한 가지에 새들이 앉아 있어요
   새들은 나뭇가지를 서로 바꿔가며 날아 앉아요

   새들이 날아가도록 허공은 왼쪽을 크게 비워놓았어요

   모두가
   흐르는 물의 일부가 된 것처럼
   서쪽 하늘로 가는 돛배처럼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동네, 2018.

   ―  제31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