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사슴
이경림
얼마나 오래, 얼마나 질기게 견디면 나무 둥지 속에 염통이 생기고 쓸개가 생기고 고요히 흐르던 연둣빛 수액이 뛰노는 붉은 핏물이 되는 걸까
얼마나 멍하니
얼마나 머엉하니 기다리면 수십 년 붙박였던 뿌리가 저리 겅중거리는 발이 되는 것일까
아직 나무였던 시간들이 온 몸에 무늬로 남아 있는데
제 몸이 짐승이 된 줄도 모르고 자꾸 허공으로 가지를 뻗는 철없는 우듬지를 그대로 인 채
저 순한 눈매의 나무가
한 그루 사슴이 되기까지는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 중앙북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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