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객
정우영
행촌아자씨 아니셔? 나요, 살구남댁. 나 몰라요? 살구낭집이라니께. 아니, 뭘 빤히 쳐다만 본디야. 내 얼굴에 멋이 묻었다요? 아이고마니나, 혹시 귀잡쉈어? 이런 변이 있나. 어쩌다가 이리 되셨다요. 평생을 버럭버럭 고함만 쳐서 그런가. 행촌아짐은 잘 계시제요? 어치케 됐다고? 오마나오마나. 하늘나라 가셨구만이라. 나보담도 아랜디 워찌 그리 급했을까이. 행촌아짐 몫꺼정 잘 사셔야 헐텐디, 귀잡숴서 큰일이요. 점심은 자셨다요? 식전인갑네. 여그, 인절미요. 요기라도 허시씨요. 부처님 가호로 남은 생 그저 신간 편케 사시쇼이. 지나고본게 죽고사는 거시 암것도 아닙디다. 아자씨 글제요? 아고, 파란불이 깜짝이는갑소. 건너가야 허는디 발이 더디요. 저 줄백이 넘는 거시 요단강 건너는 거맹키요. 그나저나 아자씨 낭중에 올라가서 마나님 워찌 만난다요. 눈이라도 크게 뜨고 계시쇼이. 귀 어두우니 눈이라도 밝아야제. 행촌아짐 같은 짝 천지간에 없을 것이요. 나사 지랄맞은 영감탱이 절대 피해야겠제만은.
―《현대시》2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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