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김경후
세상 모든 정오들로 만든 암캐가 왔다, 나는 그 암캐를 알지 못하지만, 그 정오부터 알 수 없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흑점의 온도로 울부짖는 암캐, 그 울부짖음 집어삼키는, 암캐의 뱃속에, 박히는 칼, 나는 요리는 모르지만, 뱃속보다 깊은 어둠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칼끝에서 첫 핏방울이 떨어질 때부터, 시퍼렇게 목줄기가 찢어질 때부터, 그 목줄기 울음 따라 핏줄이 터질 때부터, 나는 마음에 없는 말과, 말없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내 목줄기를 향해 달려오는 톱니바퀴, 돌고 도는 톱니바퀴의 울음도 울 줄 알았다, 암캐처럼, 암캐가 없어도, 땡볕에, 나는 그 암캐와 함께 끌려갈 줄 알았다, 암캐처럼, 동네 냇가에 아주 오랫동안 끌려가지 않기 위해, 나는 내가 알 수 없는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나는 그 암캐를 알지 못하지만, 그날부터, 세상 모든 정오들로 만든 암캐가 됐다, 그날 저녁, 부엌 구석에서 나는 쩝쩝거리며 고기를 먹었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뱃가죽이 찢어지는 소리로 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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