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감나무 옷장
김경후
거대한 벼루 같은 밤
먼 옛날을 닫는다
곧 돌아올 오늘마다 열었다 닫는다
감나무 단 냄새를 연다
먹 냄새를 닫는다
삐거덕거리던 새벽 여섯 시들을 연다
늙은 좀벌레들이 하얗게 죽은 밤 열한 시들을 닫는다
곰팡이 핀 북쪽 벽을
비어 있는 나프탈렌 주머니를
닫는다 열고 닫는다
먹감나무 가지에 걸렸던 바람의 묵음들
구멍 난 바지들
닫고 닫는다
땔감이 되고 잿가루가 될 때까지
연다 닫는다 삐그덕거린다
집을 떠받들 뿌리 내릴 때까지 닫아버리기 위해
연다
빈 옷걸이 텅 빈 고요 속
거꾸로 매달려 몸을 떠는 집유령거미
검은 집 다락 속 먼 이야기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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