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먹감나무 옷장 - 김경후

공산(功山) 2019. 1. 17. 19:01

   먹감나무 옷장

   김경후

 

   거대한 벼루 같은 밤

   먼 옛날을 닫는다

   곧 돌아올 오늘마다 열었다 닫는다

   감나무 단 냄새를 연다

   먹 냄새를 닫는다

   삐거덕거리던 새벽 여섯 시들을 연다

   늙은 좀벌레들이 하얗게 죽은 밤 열한 시들을 닫는다

   곰팡이 핀 북쪽 벽을

   비어 있는 나프탈렌 주머니를

   닫는다 열고 닫는다

   먹감나무 가지에 걸렸던 바람의 묵음들

   구멍 난 바지들

   닫고 닫는다

   땔감이 되고 잿가루가 될 때까지

   연다 닫는다 삐그덕거린다

   집을 떠받들 뿌리 내릴 때까지 닫아버리기 위해

   연다

   빈 옷걸이 텅 빈 고요 속

   거꾸로 매달려 몸을 떠는 집유령거미

   검은 집 다락 속 먼 이야기에 닿는다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바라기 - 김경후  (0) 2019.01.17
잉어가죽구두 - 김경후  (0) 2019.01.17
겨울산 - 안상학  (0) 2019.01.16
물은 언제 뜨거워지는가 - 송재학  (0) 2019.01.15
가자미 - 김영희  (0) 2019.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