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마음 1 - 이영광

공산(功山) 2019. 1. 4. 20:10

   마음 1

   이영광

 

 

   인간들이 입에 칼을 물고 다니는 것 같아

   말도 안 되게, 찌르고 베고 보는 거야

   안 아프지도 못하면서

   저 아프면 우는 것들이

 

   예전에, 수술 받고 거덜 나 무통 주살 맞고 누웠을 적인데

   몸이 멍해지고 나자, 아 마음이 아픈 상태란 게 이런 거구나 싶은

   순간이 오더라고, 약이 못 따라오는 곳으로 글썽이며

   한참을 더 기어가야 하더라고

 

   마음이 대체 어디 있다고 그래? 물으면,

   몸이 고깃덩이가 된 뒤에 육즙처럼 비어져 나오는

   그 왜, 푸줏간 집 바닥에 미끈대던 핏자국 같은 거,

   그 눈물을 마음의 통증이라 말하고 싶어

 

   살아보면, 원수가 왜 식구 중에 있을까 싶은 날도 있지만

   피가 섞였다는 건 말이지, 보조 침대에 구겨져 새우잠 자는

   식구란 말이지, 같은 피 주머니를 나눠 찬 환자란 걸

   마음이 우니까 알 것 같더라고

   그게 혈육이더라고

 

   세월호 삼보일배가 살려고, 기어서 남녘에서 올라오는데

   잃은 아이 언니인가 누나인가 하는

   그 여린 아가씨,

   옷이 함빡 젖고 운동화가 다 해졌데

 

   죄 많고 벌 없는 이곳을 뭐라 부를까

   내 나라라는 적진敵陣을 부러질 듯 오체투지로 뚫으며

   몸이 더 젖고 더 해지는 동안,

   거기 세든 마음이란 건 벌써 길 위에 길처럼

   녹아버렸겠다 싶더라고

 

   마음이란 거 그거, 찌르지 마, 자꾸 피가 샌다고

   중환자실 천장에 달려 뚝뚝 떨어지는 피 주머니 같은 그것에게

   칼질 좀 하지 마

   그 붉은 것, 진통제도 무통주사도 안 듣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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