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두 줄
― 조정권 시인 영전에
이영광
선생은 자신에게 가혹했지만
시는 선생에게 더 가혹하였다
시나 부축하다 가는 거지요
속된 게 싫은 속인이요만
노래하는 진흙 덩이요만,
물신의 세계에서 시인의 적은 바로
시인 자신이지요
무엇보다 먼저 제가 시인임을
견뎌야겠지요
세상의 감금,
세상으로부터의 감금 잠깐 풀고, 어느 봄날엔
태릉 배꽃 아래서
한잔합시다,
합시다 하던
괴력 정신 등반가
국내 망명자
시 중독자
선생은 시를 사랑했지만
시는 선생을 더 사랑하였다
죽은 어미 젖을 빠는
뼈만 남은 아이처럼
그 뼈를 노리는 맹금류나
상처를 빨아먹는
파리 떼처럼
이봐요, 고개를 들어요
시에나 씌다 가는 거지요 시에
견뎌지다 견뎌지다
가는 거지요
실성 끝에 사랑이 달성된 언 산정에
꽃 장식도 수식도 없이
뜨거운 염문처럼
단 두 줄,
시인 조정권
1949~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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