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하느님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 - 정한아

공산(功山) 2019. 1. 7. 19:00

   하느님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

   정한아

 

 

   죽은 자는 편리하다 

   모든 책임은 그에게 떠맡기면 되니까 

   울부짖을 목구멍도, 송사를 제기할 손가락도 없으니까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죄와 사랑은 이제 영원히 

   무저갱 속으로 침묵하고 

   침묵의 관은 넓고도 넓어 

   여차하면 삼라만상을 품을 수도 있으니까 

 

   죽은 자는 참으로 편리하다 

   그가 웃어도 울어도 

   깊고 검은 침묵의 울림통이 이 작은 별에 기별하는 것은

   고작 실바람, 때때로 태풍과 눈보라

   아무도 그 연원을 궁금해 하지 않으니

 

   죽은 자의 이름은 

   어떤 백성들에게는 태양이고 

   어떤 떠돌이들에게는 태양의 흑점이고 

   대개 알려진 바로는 허풍선이라지만 

   시인들은 누구나 당신의 눈동자라는 걸 

   안다, 불면의 밤, 거울 속에서 

   흔들리는 작고 요란한 빛 

 

   끝내 발광하는 

   오래 뭉친 어둠 

   자연 발화하는 

   푹 삭힌 침묵 

 

 

  『울프 노트문학과지성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