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교양
정한아
중성화라는 말은 참 중립적이다
자기 안의 야생성을 두고 사람들은
자연이라고도 하고 비인간이라고도 한다
나는 내 시를 중성화해야 할지, 울게 내버려둬야 할지
에라, 모르겠다, 우리 집 고양이는 사춘기
온 집안사람들을 물고 할퀴고
가둬두면 문을 긁어대며 울어대며
밥과 변기만으로 살 수 있겠냐고, 이 잡식하는 벌거숭이 종자들아,
뭔지 모르겠지만 내 안엔 해방되어야 할 난폭함이 있다고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책상 앞에 앉아서
정작 난폭한 건
짐승과 함께 살기로 한 마음이었는지, 나는 뭐
짐승 아닌가? 난 중성화도 안 했는데 아니,
교양을 쌓았잖어 날마다 무언가를 (거의 모든 것을)
참으며 자기가 자기를 중성화하며 그것이
교양 아닌가 우리 집 고양이의 사춘기에
날뛰는 야생을 문 뒤에 두고 교양을 쌓고 있는
나와, 나의 닳아버린 송곳니와, 그러나
여전히 꺼칠한 혓바닥과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승화된 난폭함
중성화라는 말은 참 중립적이다
물어뜯고 싶은 것들이 세상에 이토록 가득한데
기특하게 사람들이
아무튼 거리를 활보한다
―『울프 노트』 문학과지성사, 2018.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수염고래의 노래 - 정한아 (0) | 2019.01.07 |
---|---|
노老시인의 이사 - 정한아 (0) | 2019.01.07 |
대장장이 - 정한아 (0) | 2019.01.07 |
하느님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 - 정한아 (0) | 2019.01.07 |
유리딱새가 답해주지 않은 것 - 정한아 (0) | 2019.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