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유리딱새가 답해주지 않은 것 - 정한아

공산(功山) 2019. 1. 7. 10:53

   유리딱새가 답해주지 않은 것

   정한아 

 

 

   누가 불러 나가본 가을 저녁 그녀는

   아파트 정원에 모로 누워 있었다

   꿈꾸듯 눈을 반쯤 뜨고

   두 발을 쭉 뻗고

   날아가던 모습 그대로

   가슴에 부러진 나뭇가지를 꽂고

 

   방금 전까지 파닥이던 날개와 미세근육과

   방수기능이 있는 깃털과

   콩닥거리던 크림색 가슴

   공중에 놓였던

   가늘고 긴 발가락

 

   작고 가볍고 가냘픈 어떤 삶이

   자기의 전체를 가져다 놓고 무언가가

   사라졌는데

 

   작고 가볍고 가냘파서

   금방 식어버려서

 

   점점 바래가는 꽁지의 푸른빛으로부터

   무언가 분명해졌으므로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게 된 슬픔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기로

 

 

   ―계간시와 사람 2018.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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