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떡
전동균
살아남기 위해 옆구리에 상처를 내는
산짐승이다 잠들어서도 떨고 있는
눈꺼풀이다
저녁 눈 위에 쌓이는 밤눈, 첫 잔에 숨이 확 타오르는 독작의 찬 술이다
순장을 당하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웅크려야
간신히 잠드는 날들
객사 창틀에 놓여
얼다 녹다 얼다 녹다
곰팡이가 슨 저것은
파문하라, 나를 파문하라
소리치는 보름달빛이다 그 달빛과 싸우다가
스윽, 제 배를 가르는 오대천 상류의 얼음장이다
아니다, 신성한 경전이고
흑싸리 껍데기고
밤마다 강릉 콜라텍 가는 도깨비 스님이다 가방 속의 가발이다
멀리 있을수록 뜨거운 여자의 살,
살 냄새의 늪이며
이무기의 울음이며
너의 민낯이다, 혀를 차면서도 이 시를 읽고 있는
⸺《미네르바》 2018,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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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뿐만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시간은 경험의 특정한 양식이 된다. 시간은 공간보다도 더 일반적이다. 그것은 어떠한 공간적 질서도 부여될 수 없는, 감정이나 관념 같은 내면의 세계에까지 적용되기 때문이다. “얼다 녹다 얼다 녹다/ 곰팡이가 슨” 화자의 시간은 주관적 형태와 검증을 거부한다. 현실적이건 허구적이건 한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이러한 방식은 의식의 흐름과 기억 속에 유의미한 연상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마른 떡’이라는 제목과 내용의 결을 더듬으며 다소 의아함과 난처함이 들었지만, “혀를 차면서 이 시를 읽고 있는” ‘나’를 이미 짐작하고 있는 시인을 짐짓 피하기로 했다. 창가에 놓인 마른 떡에 곰팡이가 슨 것을 보고, 시인은 성(聖)과 속(俗)을 한통속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의 삶 역시 간단치는 않아 보인다. “순장을 당하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웅크려야/ 간신히” 잠에 들 수 있다는 화자의 고백은 자신의 삶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이미 독작의 고독과, 가발을 쓰고 콜라텍에 가는 스님을 알고 헤아리는 자이며, 스스로를 파문시키고 싶은 자이다.
이때 화자에게 경험되는 시간은 기록이 아니라 실존의 범주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시인은 ‘시간’에서 ‘의의’를 담보해 낸다. 인간적 삶은 시간의 그림자 밑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며, 내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결국 나는 무엇이 되는가의 견지에서, 자아의 정체성을 탐색하게 된다. 문학에서 다루는 실존주의의 모든 변용태는 결국 개인적 삶의 객관적 구조가 아니라 개인 자신에 의해 경험되는 인간적 실존에 수렴된다. 그래서 전동균 시인의 작품들이 늘상 실존적 테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도 그러하듯이 경험된 시간은 삶의 맥락에서 불가분적인 범주다. 시인은 이러한 범주를 실존적으로 묘사하는 데에서 특수한 딜레마에 부딪히면서도, 동일한 자의를 재구성하고 정당화할 가능성을 스스로 무력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은 화자와 스님과 마른 떡 사이의 불연속적이고 차별적인 경험을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연속성과 연관성, 정체성을 포착해 낸다. 이는 시인에게 부여된 사명을, 시인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방식으로도 읽힌다.
-- 계간 《시인수첩》 2018년 가을호, 「계간 시평」 부분
김병호 (시인, 협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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