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하상욱(1967~2023) 시골집 텃밭에 쭈그려 앉아 무를 뽑았다 희고 투실투실한 무였다 너희들 나눠 주고도 이걸 다 어떻게 하냐 시장에 나가서라도 팔아 볼거나 어머니는 뜻하지 않은 욕심이 생겼다 머릿속을 텅 비게 해 주는 무였다 손이 부지런히 움직였고 마음은 쉬었다 뽑아낸 자리마다 근심을 묻었다 이 무를 숭숭 썰어 넣고 국을 끓이면 얼마나 시원하려나 내 근심 묻은 자리마다 무가 다시 자라날 것을 어머니도 알고 나도 알았다 애초에 어머니도 무였고 나도 무였으니 그러니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 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을 읽는다. 시인은 ‘달나라 청소’라는 상호..